"치킨은 원래 맛이 없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닭고기 맛의 설계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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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원래 맛이 없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닭고기 맛의 설계된 비밀

프랑스 동부 브레스(Bresse)의 안개 낀 초원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곳에는 선명한 붉은 볏과 순백의 깃털, 그리고 강렬한 푸른색 발을 가진 닭들이 유유히 거닙니다. 프랑스 국기의 삼색(Tricolore)을 몸에 품은 이 '풀레 드 브레스(Poulet de Bresse)'는 한 마리에 10만 원을 호가합니다. 반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마트의 생닭은 채 1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같은 종(種)임에도 이토록 극명한 격차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무엇일까요? 답은 바로 '시간'입니다.시간의 마법: 30일과 4개월이 빚어낸 테루아의 정수산업용 닭이 태어나서 도축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0일입니다. 반면 브레스 닭은 최소 4개월(120일)의 시간을 온전히 채웁니다. 단순히 생존 기간의 차이가 아닙니다. 알프스와 쥐라 산맥 사이, 습한 안개가 지면을 적셔 벌레와 풀이 풍부한 브레스 특유의 '테루아(Terroir, 장소가 만드는 맛)' 속에서 닭들은 한 마리당 10제곱미터라는 광활한 영토를 누립니다. 사람으로 치면 넓은 방 하나를 홀로 쓰는 셈입니다.자유롭게 흙을 밟으며 근육을 채운 닭은 도축 전 마지막 2주간 어두운 곳에서 곡물을 먹으며 풍미를 응축시키는 과정을 거칩니다. 공간의 여유와 기다림의 미학이 결합될 때, 비로소 고기는 단순한 단백질을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 됩니다.1957년, 프랑스 정부는 와인이나 치즈에만 부여하던 원산지 통제 인증인 AOC를 세계 최초로 닭에게 부여하며 브레스 닭의 독보적인 가치를 공인했습니다.효율의 역설: 가슴살은 커졌지만 향은 사라졌다오늘날 우리가 먹는 닭은 1948년 미국에서 열린 '브로일러 산업 콘테스트' 이후 철저히 효율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더 적은 사료로 더 빨리 키우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 결과, 1950년대에 84일이 걸리던 출하 기간은 현재 30일 내외로 단축되었습니다. 가슴살 비율 또한 체중의 15%에서 25% 이상으로 기형적으로 비대해졌습니다.이 놀라운 효율성은 '담백함의 함정'이라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근육이 섬유질을 촘촘히 채우고 지방이 고유의 향을 축적할 시간을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담백하다'고 느끼는 산업용 닭의 맛은, 냉정히 말해 '맛의 부재'를 뜻하기도 합니다."고기는 부드럽지만 향이 없습니다. 담백함은 맛이 없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닭고기의 맛은 닭 본래의 맛이 아니라, 산업이 설계한 맛입니다."붉은 근육의 과학: 왜 토종닭은 '질기다'고 오해받는가많은 이들이 토종닭을 먹으며 '질기다'고 말하지만, 이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풍미가 응축된 조직감'으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비밀은 '미오글로빈(Myoglobin)'에 있습니다. 운동량이 많은 근육은 산소를 저장하기 위해 미오글로빈 수치를 높이는데, 이는 마치 고강도 훈련을 견딘 운동선수의 근육처럼 조밀하고 붉은빛을 띱니다.산업용 닭의 가슴살이 유독 하얀 이유는 운동이 전무해 미오글로빈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100일 넘게 대지를 누빈 토종닭의 붉은 살코기는 씹을수록 진한 육즙과 향을 뿜어냅니다. 삼계탕을 끓였을 때 뼈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콜라겐과 살코기의 깊은 향은 오직 시간을 견딘 붉은 근육만이 선사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결코 질긴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깃든 '씹는 맛'의 정수입니다.요리가 재료를 결정한다: 브레스 닭으로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면 안 되는 이유미식의 세계에서 '비싼 재료'가 늘 정답은 아닙니다. 기름의 고소함과 튀김옷의 바삭함이 지배하는 프라이드 치킨에는 오히려 산업용 닭이 더 적합합니다. 브레스 닭이 가진 섬세하고 복합적인 테루아의 향은 강한 튀김 향에 묻혀버리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고 균일한 조직감을 가진 산업용 닭이야말로 튀김이라는 조리법에 최적화된 재료라 할 수 있습니다.반대로 재료 본연의 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로스트 치킨이나 삼계탕에는 반드시 '시간이 깃든 재료'가 필요합니다. 오븐 속에서 피부 아래 지방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살결마다 풍미를 입히는 마법은 오직 자연과 대화하며 자란 닭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광경입니다."세상에서 가장 좋은 닭입니다." — 조르주 블랑 (프랑스의 전설적인 셰프)조르주 블랑과 같은 거장들이 브레스 닭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특정 지역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장인의 고집이 응축된 '시간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700억 마리의 무게: 우리가 내는 돈에 담긴 시스템의 가치현대 축산 시스템은 연간 700억 마리의 도축이라는 압도적인 효율을 달성했습니다. 덕분에 인류는 저렴한 단백질을 공급받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슴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다리가 부러지는 닭들의 윤리적 긴장이 숨어 있습니다.우리가 마트에서 저렴한 닭을 집어 들지, 혹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긴 시간 공들여 키운 닭을 선택할지는 단순한 미식의 취향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식량 시스템을 지지하고, 어떤 생태적 미래에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행위와 같습니다.결론: 당신의 식탁 위에 놓인 '시간'을 음미하십시오브레스의 푸른 초원을 걷는 닭의 붉은 볏과 파란 발을 떠올려 봅니다. 최고의 재료는 자연이 홀로 만든 것도, 인간의 기술로만 빚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긴밀하게 소통하며 쌓아 올린 공동의 유산입니다.식탁 위에 놓인 닭고기를 마주할 때, 이제는 그 살결 속에 아로새겨진 시간을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고기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까? 그 속에 깃든 장소와 방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당신의 식사는 비로소 진정한 미식의 영역으로 진입할 것입니다.

입안에서 사라지는 마법, 혹은 씹을수록 깊어지는 여운: 우리가 몰랐던 소고기 속 ‘설계된’ 맛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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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사라지는 마법, 혹은 씹을수록 깊어지는 여운: 우리가 몰랐던 소고기 속 ‘설계된’ 맛의 비밀

서울의 어느 해 저무는 저녁, 한우 식당의 정취를 떠올려 봅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 위로 선홍빛 꽃등심이 오르는 순간, 정적을 깨는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열기에 반응해 지방이 녹아내리고 표면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흡사 하나의 정교한 리듬과 같습니다. 아무런 가미 없이 입에 넣었을 때, 첫 점은 육즙의 파고를, 두 번째는 지방의 고소함을, 그리고 마지막엔 코끝을 스치는 깊은 향의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는 이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의 집합체를 흔히 '진하다'라고 표현합니다.'진하다'라는 형용사는 모호해 보이지만, 사실 한우의 본질을 꿰뚫는 가장 통찰력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소고기가 이 '진함'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미식 시장의 세 축인 와규(Wagyu), 앵거스(Angus), 그리고 한우는 각기 다른 시대적 질문과 문화적 갈망에 답하며 지금의 맛을 완성했습니다. 왜 어떤 소고기는 솜사탕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어떤 소고기는 씹을수록 생의 에너지를 전하는지, 그 접시 위에 설계된 미학적 비밀을 탐험해 보겠습니다.1. 고기는 원래 '노동의 부산물'이었다: 소고기 맛의 역사적 반전인류의 문명사에서 소는 오랫동안 식재료이기 이전에 고귀한 '재산(財産)'이자 고된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였습니다. 약 1만 년 전 가축화된 이래, 소의 존재 이유는 농경과 운송, 그리고 젖을 제공하는 노동에 있었습니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소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밭을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허락되는, 일종의 '마지막 부산물'을 취하는 행위였습니다.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소고기 맛의 원형을 결정지었습니다. 평생 일을 하며 단련된 소는 근육이 치밀하고 단단했으며, 그 속에는 농축된 생명력만큼이나 강렬한 육향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농업의 기계화는 소의 운명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옵니다. 노동에서 해방된 소는 이제 오직 '지방 축적'과 '효율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목적을 위해 재설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곡점에서 각 문화권은 자신들만의 철학이 담긴 '최고의 맛'을 정의하기 시작합니다.2. 와규: 자연이 아닌 인간이 설계한 '녹음(錄音)'의 미학와규는 일본의 독특한 식문화인 샤부샤부나 스키야키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예술품과 같습니다. 얇게 저민 고기를 뜨거운 육수에 찰나의 순간 담가 먹는 방식에서, 질긴 근육의 저항감은 방해물일 뿐입니다. 메이지 시대, 서양 품종과의 교잡을 통해 서구화를 꾀했던 일본은 이후 수십 년간 극단적인 '선택적 교배'를 반복하며 마블링, 즉 근육 내 지방의 밀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습니다.와규의 경이로운 부드러움은 철저히 계산된 과학의 결과입니다. 와규 지방의 녹는점은 섭씨 25~30도 사이로, 인간의 체온(36.5도)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혀 위에 얹는 순간 저항 없이 녹아내리는 경험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일본의 최고 등급 와규는 도축 전 600일에서 900일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고칼로리 사료만을 섭취합니다.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하여 근육의 발달을 막고, 지방의 축적을 극대화하는 사육 방식은 와규를 '자연의 산물'이라기보다 '인간이 설계한 미식적 사건'으로 정의하게 합니다."3. 앵거스: 취향이 아닌 '표준'을 선택한 미국의 전략미국의 앵거스(Angus) 품종은 와규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광활한 개척지를 배경으로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열어야 했던 미국에 필요한 것은 예술적 극치보다 '산업적 안정성'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균일한 품질의 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앵거스였습니다.앵거스의 핵심 가치는 '표준화(Standardization)'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복 없는 품질을 유지하는 앵거스는 미 농무부(USDA)의 초이스(Choice)나 프라임(Prime) 등급을 가장 안정적으로 획득하는 품종이며, 맥도날드와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가 전 세계 매장에서 동일한 맛을 구현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입니다. 스테이크 문화에 최적화된 이 고기는 지방보다 단백질의 밀도가 높아, 고온에서 구웠을 때 강력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바삭한 표면(Crust)과 육즙 가득한 속살의 극적인 대비를 선사합니다.4. 한우: '녹는 맛'과 '씹는 맛' 사이의 위대한 균형한우는 외래종과의 대대적인 교잡 없이 한반도의 산천과 한국인의 삶 속에서 독자적인 생존 기를 써 내려온 존재입니다. 황갈색의 몸에 작고 단단한 체형을 지닌 이 소는, 일 잘하는 일소로서의 강인함과 미식적 가치를 동시에 보존해 왔습니다. 한우의 미학은 와규의 극단적인 부드러움과 앵거스의 거친 육향 사이, 그 절묘한 지점에 위치한 '균형'에 있습니다.한우 지방의 핵심인 '올레산(Oleic acid)' 함량은 풍미의 결을 결정짓습니다. 불포화지방산의 고소함이 혀를 감싸면서도, 근육 자체의 탄력이 살아있어 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 이는 고기를 구워 쌈을 싸 먹거나 장시간 국물로 우려내는 한국의 식문화와 궤를 같이합니다. 한우의 맛은 첫 입에 사라지는 마술이 아니라, 여러 번 씹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열리는 풍미의 층위'를 경험하게 합니다.재미있는 점은 한우를 진정으로 아는 미식가들의 비밀스러운 선택입니다. 그들은 간혹 최고 등급인 1++보다 한 단계 아래인 1+ 등급을 고집하곤 합니다. 마블링이 지나치게 과할 경우, 한우가 지닌 고유한 육향과 복합적인 풍미가 지방의 맛에 압도되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등급이라는 숫자를 넘어 고기 본연의 성질을 즐기려는 심미안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5. 마블링 계급도: 누가 소고기의 가치를 결정하는가?현재 전 세계 소고기 시장의 권력은 일본이 정립한 'BMS(Beef Marbling Standard)'라는 잣대에 의해 움직입니다. 1부터 12까지 마블링의 정도를 수치화한 이 기준은 현대 소고기 등급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지방 중심의 계급도'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과도한 지방 섭취가 주는 건강상의 우려, 제한된 사육 환경에서의 동물 복지, 그리고 막대한 곡물 소비에 따른 환경적 비용이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위적인 마블링 대신 광활한 초지에서 풀을 먹여 키운 '그래스페드(Grass-fed)' 소고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오메가3 지방산과 본연의 향미를 중시하는, 맛의 기준점이 다시 한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당신의 접시 위에 담긴 철학우리가 마주하는 소고기 한 점은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와규는 입안에서 찰나에 사라지는 '녹음'의 미학을 설계했고, 앵거스는 전 세계가 공유하는 맛의 '표준'을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한우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육향과 지방의 고결한 '균형'을 지켜내며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최고의 재료란 절대적인 숫자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길러진 시간과 그것을 마주하는 이의 철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비로소 결정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지금까지 소고기의 '지방'만을 탐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음미했던 것일까요? 당신이 정의하는 가장 완벽한 한 점은 어떤 기억을 담고 있습니까.다음 시간에는 우리 식탁에서 가장 친숙하면서도,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본연의 맛을 가장 많이 잃어버린 식재료, '닭고기'에 담긴 문명사적 진실을 찾아 떠나보겠습니다.

[세뇌]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Life

[세뇌]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선물옵션이라는 파생 상품을 거래하고 있다. 정확히는 ‘옵션’ 상품을 거래한다. 옵션이란 미래의 가치를 사고팔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말리는 사람도 많다. 특히 아내도 항상 나를 보면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한다.월급만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없다코로나 시절이었다. 과거 사회 초년병 시절의 회사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며 아직까지도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 중 한 친구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간 프로그래머였다. 우리는 나름 원격으로 재미있는 앱이나 만들어보자고 뭉치며 미국에 회사도 설립했었다. 그 친구와 우리의 시차를 맞추느라 주말 낮에 화상 회의를 진행하곤 했다. 그때 그 친구가 한 마디를 했다.미국은 기회의 땅이더라.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인간의 인생은 길어졌어. 이제 자신의 월급만으로 나머지 반평생을 살 수 없는 시기가 도래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노동력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인 거야우린 주중엔 회사일로 바빴지만 주말엔 원격으로 모여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나오긴 했는데 결국 출시에는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달았고 미처 생각지 못 한 점들이 발견되었다. 저작권이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로 앱스토어 담당자와 한바탕 싸우기도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앱출시에 실패한 후 한 동안 또 각자 일에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다시 회의를 요청했다. 우린 꼭 일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각자 근황토크나 최신 IT트렌드 같은 주제로 수다를 떨곤 했는데 그날 그 친구는 주식의 옵션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옵션의 기본 원리에 대한 3차례의 강의를 하겠다고 했다.최근 내가 옵션을 시작했는데. 이 좋은 걸 사람들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약간 부담스럽지만 너희에게 옵션의 기본 원리 등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아직 잊지 않았지? 우리의 나머지 미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확률 게임이고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은행이자보다 훨씬 높은 투자 수익을 가져올 수 있을 거야!그 친구의 설명은 그럴듯했다. 물론 그 친구의 부인도 옵션에 부정적이라 모르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 설명을 따라서 해보니 나도 95%, 98%로 이기는 게임이 지속됐다. 그런데 이런 승률을 가져가려면 아주아주 지루하고 수익률은 매우 낮았지만 결과적으로 총액은 나쁘지 않았다. 몇 번 성공적인 거래를 하면서 욕심이 생기게 됐다. 95% 확률은 너무나 재미없고 90%, 85% 확률에 건다면 더 빠르게 수익이 늘어나지 않을까꼭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난다. 위험을 감수할 때마다 위기가 찾아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옵션은 선물과는 다르게 방향성이 아닌 범위만 맞추면 됐다. 옵션을 하면 투자금 대비하여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 돈을 건다손 치더라도 95%가 아닌 5%의 확률이 나올 수 있고 이때를 대비해 놓지 않는다면 정말 패가망신도 할 수 있는 것이 옵션이라 가끔 나오는 5%의 확률에 욕박할 때면 식은땀이 날 때가 많았다.그렇다면 주식의 대가나 경제학자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그런 얘기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제 아무리 내로라하는 석학들도 완벽하게 예측은 못 했고 가끔 파생상품을 잘못 운영하여 회사가 쫄딱 망했다는 얘기도 듣곤 한다.미국에는 이런 옵션 투자자를 위해 예측 데이터 자체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월정액을 내고 지속적으로 받는다고 했고 이들의 예측은 엄청날 정도로 정확하다고 했다. 나는 왜 그런 데이터를 돈을 받고 파는지 의아하긴 했다. 본인들이 해당 데이터로 옵션을 하면 떼돈을 벌텐데 말이다. 나보다 더 베테랑인 친구는 옵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옵션의 제1법칙은 욕심을 버려라라면 제2법칙은 손절이다. 이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일 텐데 손해가 발생했을 때 조금만 더 버티면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본인이 미리 손절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정하고 미련 없이 실행한다면 결코 손해를 볼 수 없을 거야미래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발생하면 빠르게 대처하는 것은 아닐까미래란 알 수 없기에 미래를 자신의 예언에 따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변화의 방향에 따라 나의 (옵션처럼) 포지션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미래가 아닌 현실에 따라 매일매일 대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지. 즉, 미래에 10% 상승에 베팅했는데 오늘 1% 하락이 나온다면 바로 나의 예측인 10%를 9%로 수정하는 것. 미련하게 반드시 10% 상승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미래는 현실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나의 인생도 미래가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결코 옵션 찬양 이야기는 아니다. 참고로 나는 최근 옵션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지만 잘 알다시피 최근 우리나라 정치적 변동성이 너무가 커서 주식 시장이 요동쳤었다. 옵션을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삶의 질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시작할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세뇌] 결말은 의외로 시시하다
Life

[세뇌] 결말은 의외로 시시하다

1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때 아버지를 경기도 벽제의 한 추모공원에 모셨었다. 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즐긴다. 서울을 벗어나 점차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고즈넉해지고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그곳에 가면 자동차의 유리문을 내리고 깊게 심호흡을 한다. 자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로컬푸드 전문판매점이 있는데 근처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들을 저렴하게 직거래할 수 있는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도 이곳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납골을 모실 곳도 고민 없이 이곳으로 결정했다. 근방에는 다양한 납골당이자 추모공원이 있어 선택의 폭이 컸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함 위치를 바로 정면에 큰 소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선택했다. 아버지 동료-주변 납골-들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나는 이제 영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아버지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실 이런 추모공원의 위치는 집에서 가깝다고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멀다고 많이 못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마음 가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모셨기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이곳은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차가 막히면 2배 정도는 걸릴 수도 있기에 나는 언제나 주말 아침 일찍 가곤 했다. 물론 추모공원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에 문을 열지만 8시가 좀 넘으면 문을 개방했다. 거기서 아버지를 만나고 9시에 문을 여는 - 이곳도 8시 반이 넘으면 문을 개방한다 - 로컬푸드 마켓에서 값싸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사가는 건 즐거움이었다.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방문은 꽤 자주 가게 되었다. 또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 자동차 안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 젊었을 때의 인기 가요를 가장 크게 틀고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운전을 한다. 댄스음악부터 여성보컬의 고음처리까지 장르는 변화무쌍하다.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 과속하지 않습니다 -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하다 보면 어느새 아버지가 계신 곳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날 때면 이미 난 진이 빠져있었다.내가 어떤 고민과 마음속에 짐을 가지고 왔는지 까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내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도망치지 말라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의 유골함 앞에 하염없이 서있다 보면 다시 그와의 대화가 가능해진다.“어쩐 일이냐. 애들은 잘 있지?”“그럼요. 아버지는요?”“나야 잘 지내지. 바로 옆에 새로 친구가 들어왔어. 매일 그 양반이란 대화가 그치지 않아. 그리고 저쪽 대각선 저 양반도 죽이 잘 맞아. 생전에 술 좋아하던 친구들이라. 여기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거워. 날씨도 언제나 화창하고”“잘 지내시다니 다행이네요. 좋아 보여요. 걱정 안 할게요”“왜, 너 무슨 일 있어? 왜 마음이 안 좋아?”“아니에요. 아니에요. 나야 언제나 당신의 아들이지요”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이곳에 오자마자 모든 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뭔가 큰 깨닭음을 찾기 위해 왔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해답이 툭 튀어나왔다. 도망치지 말라고. 해답이란 것도 의외로 시시했다. 이곳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오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내가 고민하던 그것은 음악과 자연의 내음에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나는 그렇게 다시 가벼워져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곳에 오고 가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겐 치유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다시 자동차의 음악을 크게 틀었다.

[세뇌] 행복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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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행복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면

학창 시절 배웠던 ‘질량보존의 법칙’이 정확하게 뭔지는 잘 생각이 안 나긴 하는데 ‘행복 총량의 법칙’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행복의 양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이다란 이야기인데 당연하게 검증된 적은 없다.내 주변에서 가장 뛰어나고 능력이 있으며 자라온 환경도 엄청난 ‘엄친아’가 있는데 이 친구가 점차 친해지면서 친구의 가정사나 개인적인 내막을 들려주었다. 너무나 힘겹게 살아가는 친구에 더욱 큰 동료의식을 느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하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수도 있을 텐데 - 당사자에겐 아픈 이야기일 수 있으니 - 이런 류의 재벌가의 이야기나 유명인들의 삶 속에서 겪어야 하고 감당해야 할 사연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정말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컸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의 처지를 비교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항상 부러워했던 이 친구보다 내가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보상심리만은 아닐 것이다. 그 후 뛰어난 사람을 볼 때마다 저분의 인생엔 다른 어떤 슬픔의 깊이를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다시 나의 사회초년병 시절 푹 빠졌던 한국 소설이 있었다. 그의 소설은 매우 우울했고 어두웠다. 그리고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본인은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아픔을 통해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니 본인의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살아가는 일이란 결국 나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은 힘겨울지 모르나 총량의 법칙에 따라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것이란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떨지.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나는 대학 때부터 취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사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해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인생’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만 찾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도서관에 공부나 과제를 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러 갔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이문열 선생님의 수필집을 우연하게 만났었다. 지금 제목이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때 항상 내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그 문장. 힘겨울 때마다 되뇌었던 그 문장.나는 지금 내 자서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쓰고 있다이왕이면  행복 총량의 법칙을 추종해 보면 어떨까. 신이 공평하면 내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아니 내가 좀 더 부족해도 말이다. 나의 현재가 불만스럽고 힘겹더라도 이 법칙에 따라 난 조만간 내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시간이 좀 걸려도 용서하겠다는. 오늘도 나는 나를 세뇌시킨다.

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이유: 맛이 아니라 '언어'를 선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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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이유: 맛이 아니라 '언어'를 선점했다

1. 새벽 경매장의 기묘한 열기매년 1월 새벽, 도쿄 도요스 시장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는 원초적인 욕망과 자본의 논리가 교차하는 기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꼬리가 잘린 채 서늘하게 누워 있는 거대한 참치들, 그리고 그 단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지방의 결을 수술하듯 읽어내는 구매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이윽고 경매가 시작되면 숫자는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단위로 치솟고, 마침내 수억 원이라는 낙찰가와 함께 단호한 망치 소리가 공간을 가릅니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숫자를 단순히 '맛의 가격'으로만 해석한다면 우리는 그 이면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이 가격표 안에는 한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공고히 쌓아 올린, '무엇이 최고인가'를 정의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2.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가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식우리가 '최고'라 칭송하는 참다랑어(블루핀 튜나)는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경이로운 기록물입니다. 몸길이 3미터, 체중 600킬로그램에 달하는 이 거구는 시속 70km 이상의 속도로 대양을 횡단하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입니다.참다랑어가 특별한 미각적 가치를 지니는 비결은 그들의 독특한 '열정적 대사'에 있습니다.생물학적 기적: 대부분의 물고기와 달리 참다랑어는 체온을 주변 수온보다 높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차가운 심해에서도 맹렬하게 움직이기 위해 근육 대사를 통해 열을 생산하는 것입니다.지방의 기록: 이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뒷받침하기 위해 참다랑어는 근육 사이에 지방을 켜켜이 비축합니다. 강한 조류를 거슬러 오르고 수천 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그 처절한 생존의 여정은 고스란히 고기의 마블링으로 기록됩니다.바다의 정수: "참다랑어는 자신이 헤엄쳐온 바다를 몸에 담는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들이 헤쳐온 해류의 온도와 속도가 고기의 밀도와 지방의 질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의 발현입니다.3. 참치를 대하는 네 가지 시선: 자연, 기술, 경험, 그리고 언어참치는 전 세계 바다에서 포획되지만, 이를 바라보는 미학적 철학은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스페인(자연의 미학): 안달루시아의 바르바테(Barbate)에서는 2000년 전 페니키아인으로부터 전수된 '알마드라바(Almadraba)' 어법을 고수합니다. 길목에 그물을 쳐 참치가 스스로 들어오길 기다리는 이 방식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합니다. 그들은 잡은 참치를 소금에 절여 말린 **'모하마(Mohama)'**나 오일 통조림으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풍미를 시간 속에 숙성시킵니다.호주(설계된 안정성): 포트 링컨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기술로 극복합니다. 포획한 참치에게 고등어와 정어리를 집중 공급하여 체중의 30% 이상이 지방이 되도록 정교하게 설계합니다. 이는 자연산의 변동성을 배제하고 '계산된 품질'을 제공하는 공학적 접근입니다.한국(경험의 철학): 수산 물류의 허브인 부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참치 해체 쇼'는 독특한 공유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거대한 참치를 대중 앞에서 해체하며 부위별 미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귀한 재료를 함께 나누는 '축제적 경험'에 가치를 둡니다.일본(기준의 수립): 쓰가루 해협의 차가운 물살을 견딘 오마(Oma) 참치처럼 최고의 산지를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가 거부할 수 없는 엄격한 품질의 '표준'을 확립했습니다.4. 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한 진짜 비결: '언어의 권력'일본이 세계 참치 시장의 정점에 선 이유는 단순히 좋은 참치를 많이 잡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맛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언어의 표준'**을 장악함으로써 전 세계의 미각 체계를 식민지화했습니다.오늘날 스페인의 어부도, 호주의 양식업자도 자신들의 참치를 팔기 위해 **'토로(Toro, 지방이 풍부한 뱃살)'**나 **'아카미(붉은 살)'**라는 일본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부위 명칭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구축한 가치 평가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이 가격은 맛의 가격이 아닙니다. 이 숫자 안에는 한 나라가 수백 년에 걸쳐 구축한 것, 즉 무엇이 최고인가를 정의하는 권력이 들어 있습니다."참치를 해체하는 정교한 칼놀림인 '오로시', 단백질이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으로 변하는 찰나를 읽어내는 **'숙성'**의 미학까지. 일본은 '무엇이 맛있는 것인가'를 정의하는 사전(Dictionary)을 만들었고, 그 사전을 소유한 자가 결국 시장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게 된 것입니다.5. 가격과 맛의 불만족스러운 상관관계흥미로운 반전은 수억 원에 낙찰된 신년 첫 참치가 반드시 그만큼의 미각적 극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억 원의 낙찰가는 사실 맛의 대가라기보다, 식당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상징적 마케팅 비용'에 가깝습니다.진정한 맛의 차이는 경매장의 확성기 소리가 아닌, 선상에서의 '침묵하는 정교함'에서 결정됩니다.포획의 스트레스: 그물로 대량 포획된 참치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고 근육에 젖산이 축적되어 산미가 탁해집니다.외과적 정밀함: 반면, 낚싯줄로 한 마리씩 낚아 올린 참치를 즉시 뇌사시키고 피와 신경을 제거하는 '이케지메(Ikejime)' 처리를 단 몇 분 만에 완벽히 수행해야만 최상의 맛이 보존됩니다. 결국 가장 비싼 참치가 아닌, 가장 '품위 있게' 다루어진 참치가 최고의 맛을 내는 것입니다.6. 최고를 향한 욕망이 불러온 생태적 대가일본이 정립한 '토로가 최고'라는 기준이 전 세계적 욕망의 표준이 되면서, 참다랑어는 비극적인 역설에 직면했습니다. 폭발적인 수요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이어졌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참다랑어를 심각한 멸종 위기 단계로 분류해야 할 만큼 생태계는 처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라는 기준이 역설적으로 그 재료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있는 셈입니다.7. 당신이 소비하는 '최고'는 누구의 기준인가?도요스 시장의 망치 소리와 함께 결정되는 수억 원의 가격에는 어부의 시간, 숙련된 해체 기술, 그리고 일본이 수백 년간 구축한 문화적 권위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라는 수식어는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철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일 뿐입니다.최고를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지금 무엇을 대가로 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소비하는 그 화려한 기준이 누구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탐닉의 끝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이 외국인에게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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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이 외국인에게 특별한 이유

한국 사람인 저는 가끔 편의점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아니, 왜 다들 굳이 여기 와서 음료를 섞고 있을까?”바나나우유에 커피를 붓고, 환타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심지어 솔의눈 같은 호불호 강한 음료까지 섞어 마시는 모습은 처음 보면 꽤 엉뚱합니다. 그런데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그 엉뚱함 자체가 한국 여행의 매력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편의점은 그냥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여행자 스스로 조합을 만들고 실험해보는 작은 놀이터가 됩니다.여행에서만 만나는 재미여행의 묘미는 원래 “아는 것”보다 “처음 보는 것”에 있습니다.익숙한 브랜드도 한국에서는 다른 형태로 보이고, 평소엔 생각하지 못한 조합도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죠. 외국인들이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진열대를 둘러보다가, 내 손으로 직접 음료를 만들고, 그 결과를 바로 맛보는 과정이 일종의 여행 콘텐츠가 되는 겁니다.그 과정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험이 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습니다.“이게 정말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로 바뀌는 순간, 그건 그냥 음료가 아니라 여행의 기억이 되거든요.외국인이 열광하는 이유외국인들이 이런 조합에 반응하는 건 맛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국 편의점은 선택지가 정말 다양하고, 내부도 깔끔하며, 바로 앉아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서 이런 시도를 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게다가 레시피가 복잡하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결과가 예상 밖일수록 더 큰 재미가 생깁니다.또 하나 중요한 건 공유하기 좋은 이야기라는 점입니다.“한국 편의점에서 이런 걸 만들어 마셔봤다”는 경험은 영상으로도, 사진으로도, 친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잘 남습니다. 여행은 결국 기억을 남기는 일인데, 이런 음료 조합은 그 기억을 아주 선명하게 만들어 주죠.한국인의 시선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조합은 사실 꽤 익숙한 놀입니다.어릴 때부터 바나나우유,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커피 같은 재료를 가까이 접하다 보니 “이걸 섞어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그리 낯설지 않거든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그걸 처음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는 평범했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여행 장면이 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그 차이가 재미있습니다.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한 편의점이, 외국인에게는 새로운 모험의 공간이 되는 거예요. 같은 장소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됩니다.새로움의 가치결국 이런 바이럴 꿀조합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맛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새로운 맛을 시도한다는 건 낯선 나라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이고, 예상 밖의 조합을 받아들이는 건 여행자에게 꽤 중요한 즐거움입니다. 익숙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먹는 순간, 여행은 훨씬 더 생생해집니다.그래서 저는 이런 현상이 참 한국답다고 느낍니다.빠르고, 간단하고, 즉흥적이고, 무엇보다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의점 하나만으로도 여행자들은 작은 발견을 하고, 그 발견은 결국 “한국에서만 해볼 수 있었던 경험”으로 남습니다.마무리바로 그 점 때문에 외국인들은 한국 편의점 음료 꿀조합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맛이 궁금해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여행의 새로움과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을 즐기게 되는 거죠. 한국인인 제 눈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그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일지도 모릅니다.

제주 흑돼지가 ‘인생 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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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흑돼지가 ‘인생 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1. 왜 제주의 삼겹살은 서울과 다를까?제주도 여행의 기억 중 많은 이들이 첫손에 꼽는 순간은 아마도 연탄 화덕 앞에 앉아 두툼한 흑돼지 삼겹살을 마주했을 때일 것입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녹아내리며 불꽃이 튀고, 투박하게 잘라낸 고기 한 점을 소금에 살짝 찍어 입에 넣는 그 찰나 말입니다.처음 한 입을 씹는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춥니다. 씹을수록 터져 나오는 육즙과 고소함은 말문을 막히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그 풍부한 지방이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입 안을 깔끔하게 코팅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서울에서 먹던 맛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나 신선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주라는 섬이 지닌 기후와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정교한 과학적 차이입니다.2. 첫 번째 발견: 바닷바람이 고기 맛을 설계한다 (해풍과 산패의 상관관계)제주 흑돼지의 풍미를 결정짓는 첫 번째 설계자는 역설적이게도 돼지 자체가 아닌 제주의 '바람'입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연중 강한 해풍이 쉬지 않고 불어오는데, 이 바람은 섬의 습도를 조절하며 돼지의 생체 리듬에 직접적으로 개입합니다.과학적으로 볼 때, 해풍은 지방의 산화(산패) 속도를 늦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지방이 산화되면 고기 특유의 불쾌한 비린내가 발생하게 되는데, 제주의 특수한 해풍 환경은 이 과정을 지연시켜 비린내를 잡고 고소함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환경적 개입입니다."이 해풍이 지방의 산패를 늦춥니다. 지방이 산화되면 고기에서 비린내가 납니다. 그런데 해풍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그 지방의 산화 속도 자체가 다릅니다. 이것이 제주 흑돼지의 기름이 유독 고소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3. 두 번째 발견: ‘느끼하지 않은 기름’의 비밀, 올레산(Oleic Acid)제주 흑돼지가 일반 백돼지와 궤를 달리하는 가장 큰 과학적 근거는 지방의 '양'이 아닌 '구조'에 있습니다. 흑돼지의 지방에는 올리브오일의 주성분으로 잘 알려진 '올레산(Oleic Acid)'의 비율이 일반 돼지보다 현저히 높습니다.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지방의 융점(녹는점)이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흑돼지의 지방은 사람의 체온에서 훨씬 쉽게 녹아내리며 입 안 전체에 부드럽게 퍼집니다. 상온에서 딱딱하게 굳어 텁텁함을 주는 포화지방산과 달리, 흑돼지의 기름이 마치 액체처럼 가볍고 고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분자 구조의 차이에 있습니다.4. 세 번째 발견: 3개월의 기다림이 만든 밀도 높은 식감흑돼지의 독특한 식감은 '시간'이 고기 조직에 남긴 기록입니다. 일반 백돼지는 도축 체중까지 약 6개월이 걸리지만, 흑돼지는 9개월에서 12개월이라는 긴 사육 기간을 거칩니다. 육지의 돼지보다 최소 3개월 이상을 더 기다려야 비로소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셈입니다.성장이 느리다는 것은 근육 섬유가 그만큼 조밀하고 탄탄하게 쌓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밀도 높은 조직은 씹을 때 기분 좋은 저항감을 주면서도, 어느 순간 부드럽게 끊기는 독특한 질감을 완성합니다. 흑돼지의 조직 안에는 단순히 단백질의 결합이 아니라, 섬에서 느리게 흘러간 '시간의 밀도'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습니다.5. 네 번째 발견: 소금과 불, 재료에 대한 절대적 신뢰제주 흑돼지 요리법의 핵심은 '단순함'입니다. 복잡한 양념이나 소스 없이 소금과 직화만으로 요리되는 이 방식은 재료의 완결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화려한 양념은 종종 재료의 결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으로 쓰이지만, 흑돼지처럼 완벽한 재료는 소금 하나만으로도 그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특히 연탄불의 사용은 과학적으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연탄은 가스불보다 훨씬 강력한 '고온 복사열'을 내뿜는데, 이는 두꺼운 고기 표면에 단시간에 높은 열을 전달하여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극대화합니다. 표면은 빠르게 갈색으로 변하며 수백 가지 향미 화합물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 속살은 육즙을 머금은 채 촉촉하게 익어갑니다. 고온의 불과 두꺼운 고기의 온도 차(Delta-T)가 만드는 이 조화는 단순함이 도달할 수 있는 미식의 정점을 보여줍니다.6. 다섯 번째 발견: 테루아(Terroir), 장소가 빚어낸 고유성와인에서 토양과 기후의 조화를 뜻하는 '테루아(Terroir)' 개념은 제주 흑돼지에게도 완벽히 유효합니다. 제주의 화산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하며, 여기서 자란 식물과 물을 먹고 자란 흑돼지는 육지의 돼지와는 다른 체질을 갖게 됩니다.여기에 과거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 순환 시스템이었던 '통시(전통 변소 겸 돼지우리)'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유기물을 섭취하며 순환 구조 안에서 자란 과거의 경험은 흑돼지의 내장을 튼튼하게 만들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유전적 특성을 형성했습니다. 제주 흑돼지는 단순히 특정 품종의 산물이 아니라, 화산재 흙과 해풍,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생태적 삶이 합쳐져 만들어낸 '장소의 합산'입니다.7.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결국 제주 흑돼지가 우리에게 '인생 고기'가 되는 이유는 그 한 점의 고기 안에 제주라는 섬의 장소성과 시간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이베리코나 헝가리의 망갈리차가 저마다의 땅을 대표하듯, 제주 흑돼지 역시 그 땅이 아니면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 섬의 바람과 흙, 그리고 느린 시간이 공들여 빚어낸 '결정체'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에 다시 제주의 식탁에서 흑돼지를 마주한다면, 그 고기 한 점에 담긴 섬의 기록과 시간의 밀도를 천천히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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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챌린지가 아닌 힐링이 될 수 있도록 -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제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내의 공감과 승낙이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면서 많은 부분 동의해 주었지만 제주 건축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그 많은 건축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설령 집을 짓더라도 내려가서 살지도 않을 텐데 왜 무리를 해서 추진하느냐였다. 사실 아내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바람이자 로망의 실현임을 설득했는데 아내는 그건 알겠는데 그걸 지금 당장 추진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나는 아내와 제주 땅에도 가보고 가족 제주 여행 때 관련자들도 만나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열도록 하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언제 건축에 대해 마음을 열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몇 년 전 건축에 대해 물어보려고 아이들과 함께 옆집에 방문한 적이 있잖아. 거기에 쿠팡 배달이 오고 유치원 통학차량도 오는 것을 보고 여기가 오지는 아니구나 싶어서 집을 지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때로는 작은 사유 및 현장감이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데 의외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아내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나는 전체적인 콘셉트와 인허가 그리고 공사비를 담당하고 세부 디테일한 부분은 아내에게 일임했다. 특히 인테리어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일임했는데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 “블랙계열의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한 밝은 색깔의 인테리어나 가구가 좋을 것 같아. 비용 이슈도 있으니 전체는 아닌 일부 포인트에는 좋은 원목을 사용했으면 해. 당신의 로망인 자쿠지는 관리 이슈로 히노끼를 깔 수는 없을 테고 이태리제의 히노끼 스타일 타일을 깔아주도록 하지. 힐링의 최고봉인 1인 암체어는 어떤 제품으로 할까.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알맞은 제품을 찾아봐야지!”외국계 IT 기업을 다니고 있는 아내는 여기에 ‘사물인터넷 (IOT)’ 기능까지 도입하여 서울에서도 집을 제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고민을 하였다. 아무래도 세컨드하우스가 된다면 원격으로 방범, 온도, 습도 등 공간을 원격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중국산 제품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우리나라 규격이나 시스템 연동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국내 업체를 찾다가 괜찮은 업체가 있어서 장비 협찬을 해달라고 요청해 놓았어!”아내는 이를 위해 부랴부랴 공간에 대한 우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여 집 짓는 과정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당시 팔로우 숫자는 한 자리 숫자였는데. 기대했던 협찬을 이뤄지지 않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투적인 모습은 결혼 전에만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아내 회사는 당시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진 듯 보였다. 많이 지쳐 있다 생각했는데 인테리어 관련 자료 수집이나 검토 때는 눈이 반짝거렸다. 많이 피곤해도 알맞은 콘셉트이나 자료를 검색할 때는 밤을 새우기 일 수였다.고통스러울 것 같고 멀게만 보였던 제주의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어 가면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감히 해방감과 힐링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의 각종 현실에서 미래의 우리 보금자리를 꿈꾸며 설계하는 순간엔 다른 어느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집은 EBS의 ‘건축탐구 집’을 보고 건축 기법과 인테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건축 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튜브에는 스스로 집을 수리하고 작은 공사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외장재 시행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단열재는 일체형인지 분리형인지. 전혀 몰랐던 건축기법 등을 우리 설계도와 비교하면서 무엇이 최신 트렌드인지도 비교해 보았다.  아이들과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과 또 다른 대안인 제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나 : “제주의 공간은 어떤 부분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초등 딸 : “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중등 아들 : “잠을 자는데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당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면 해”물론 이들의 제안이 충분히 반영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이 따랐다.나 : “만약 우리가 제주로 이사 간 다면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이야?”초등 딸 : “학원을 안 다녀도 되지 않을까. 방과 후에 바다에 나가서 놀면 좋겠어.”중등 아들 : “제주에 학원이 없어? 놀거리가 많았으면 하는데”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꿈을 실현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기회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남으로 이사 왔는데 강남의 학구열은 무섭기까지 했다. 최대한 강남의 시스템에 도전해 보겠지만 꼭 이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나 이를 통해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남들의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어쩌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으며 가족이 함께 한다는 건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방향으로 무작정 흘러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한 발 떨어져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랐다.

[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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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제집] 내가 4년만에 제주를 떠난 이유

이미 나는 제주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2003년 전격적으로 제주 본사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메일과 카페로 유명한 IT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부서 보스가 모든 인원을 다 불러 모아 어차피 가야 된다면 제일 먼저 가자며 본사 이전의 프런티어가 되자고 독려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한데 그때 몇몇 여성 동료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동안 얼떨떨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걱정보다는 말 그대로 아직은 혼자(싱글)이니 재미있는 도전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파격적이고 진심 어린 지원을 해주었다. 갑자기 바다 건너 섬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누구도 경험 못한 일이었을테니. 간단한 짐을 가지고 내려갔던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잊지 못한다. 저녁 달빛이 무척이나 밝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회사 근방이긴 했는데 회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잠은 오지 않았으나 머리는 맑고 상쾌했던 걸로 기억한다.아침에 윈드서핑을 하고 출근하기도 했다업무 집중도는 매우 높았다. 딱히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기에 회사 동료들과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팀원들은 가족과 같았다. 회사가 사전에 좋은 계약조건을 협상-회사는 직원들에게 체류비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매월 지급하였다. 사실 회사에서 세끼 식사를 제공했기에 이 금액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하여 모두들 같은 동네의 2~3군데 원룸에 분산되어 살았다. 마치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각자 방을 돌아다니며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제주의 정보는 주로 제주 이전 후 신규 채용된 동료를 통해 얻곤 했는데 휴식 시간이면 동료들을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가장 핫한 술집은, 제주 젊은 사람들이 주로 소개팅하는 장소는, 저렴한 가족들이 자주 가는 바닷가 횟집은, 제주엔 없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식당은, 중고가전 및 가구를 구하는 방법은?” 각자 제주에서의 생활정보 등을 찾고 교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료를 함께 구매해 나눠 갖기 일 수였다. 솜씨 좋은 동료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에 위키나 공동 작업할 수 있는 작업도구들이 발달했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혼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일단 혼자 내려와 있었다. 당장 가족이 내려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차 가족이 내려오면서 회사 사택이 부족해졌고 제주 시내 아파트 전세에서 자리를 잡는 가족도 늘어났다. 당시 회사는 제주 빈집이 2000여 채나 된다며 집을 구매하는 것은 보수적으로 임하라고 제안했다. 이때 전혀 적응을 못 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극소수의 동료는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를 하기도 했다.제주는 참 추었다제주 이전 초기에 시내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보다는 사실 제주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면세점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더욱이 젊은 제주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반을 선택한 후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아침반에 젊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실망도 잠시 아침반에서 너무나 좋은 제주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차가워보였던 사람들이 마음을 여니 너무나 따뜻한 분들이셨다. 그들은 내가 제주에 잘 적응할 수 있겠끔 저녁 모임을 자주 가져주셨다. 독특한 제주만의 지인 결혼식에도 초대해 주셨고 한라산 등반도 같이 해 주시고 겨울이 춥다고 하니 집에 있던 난로까지 가져다 주셨다. 집 구하는데 제주의 역사적 풍수지리까지 설명해 주셨다. 지금도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퇴근 후 약속이 있는 직원이 됐다. 간혹 제주가 예전의 귀향지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여기서 평생 살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중에는 제주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당시 처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적응하고 정보가 충분하게 쌓이고 그리고 가족들의 새로운 삶이 펼쳐지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솔로들에게 제주는 거친 곳이기도 했다. 정보와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나기도 했고 당시까지 스타벅스는 제주에 없었다. 어느 날 야근하다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어 당시 중문에 유일하게 있었던 ‘시애틀’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야근하다가 1시간가량 차 몰고 가 팀원들 커피를 배달해 오기도 했었다. 제주시내에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한 곳 있었는데. 기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이 들어가 있어 충격 먹었었다. 내가 시럽 빼달라고 안 했다는 이유로. 당시 여긴 시럽이 디폴트였다.6개월쯤 제주시내 원룸에 살다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영화에서만 보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이때부터 모험심 있는 직원은 산으로 바다로 이사를 떠났다. 허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는데 제주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사하는 연초 ‘신구간’이 아니면 물량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귀포 등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회사가 제주시라니 집주인이 말리기도 했다. 여기 살던 사람이 제주시에 직장을 얻어 나갔다고 어찌 제주시까지 출퇴근을 하냐고 하셨다. 서울에서 출퇴근은 왕복 2시간 넘는 게 기본이었는데. 제주는 한라산을 넘는다는 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도 큰 벽으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나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내가 구한 집은 동쪽 조천의 단독주택이었다. 중산간에 위치했는데 주변은 귤밭이었고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주인집은 옆에 함께 살았고 과거 펜션을 했던 4개 동을 ‘연세’-제주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계약형태. 전세나 월세가 아닌 1년 치를 한꺼번에 낸다-를 주고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때면 다른 동에 사는 분들과 술자리도 이어졌는데 하나 같이 육지를 떠나온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연을 듣고 치유하고 한 분씩 다시 자신의 자리로 떠나곤 했다.당시 살던 중산간 조천집. 지금은 재건축으로 남아있지 않다.꿈같은 1년이 지나고 나도 중산간과 제주의 매서운 겨울을 경험하고 살기가 너무 험난하여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집에도 못 가고 집에 있으면 나올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이후 바닷가 쪽이 중산간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함덕해수욕장에 자리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사시고 맞은편 별채에 내가 살았는데 손자처럼 너무 잘 대해 주셨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앉고 나는 가스보일러가 있는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으로 옮겼다. 제주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LPG 가스보일러를 쓰는데 이는 도심이나 신축의 경우고 아직 시골 쪽에는 기름보일러가 일반적이었다. 남들은 작은 기름차가 와서 한 드럼씩 넣는다고 하던데 왠지 큰돈 나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20리터 통 하나를 넣으면 1주일 정도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 한 통을 넣고 냉방에 이빠이 보일러를 틀고 다음날 새벽에 엔꼬가 나서 놀란 적도 있다. 이때부터 겨울에 집을 비울시에는 보일러를 끄기보다는 제일 약하게 틀고 간다.  겨울에 주말마다 기름통을 들고 한밤중에 기름 사러 다니는 것이 너무 애처로웠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제주의 겨울은 언제나 힘겨웠다. 제주살이 4년째 시내로 들어오니 시골 같은 낭만과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나는 단절되었다. 바다를 홀로 걷곤 했는데 그맘때쯤부터 바닷가에 새로운 카페들이 새로 생겨났던 것 같다.주말이면 제주 동쪽의 깊은 오름을 등반하며 바람과 대화하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매서운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그날도 홀로 오름에 올랐다. 나비가 살포시 내 어깨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충격은 또 잊을 수 없었다. 자연과 동화가 된 나는 이대로 결혼도 못하고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당시 역사적인 태풍의 위력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하천물에 자동차채로 휩쓸려 갔단다. 자연의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는 살기엔 힘겹고 가끔 와서 만끽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젊은 땐 치열하게 살고 늙어서 다시 돌아오기로. 그것이 내가 제주에 대한 감정이었다. 제주를 떠나 서울 조직으로 부서를 옮겼다. 2006년 겨울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