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제주 서쪽 한 마을의 이른 아침입니다.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돌담 안쪽, 집 뒤편 구석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돌을 둥글게 둘러 만든 우리 안에 검은 돼지 한 마리가 짚더미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우리 한쪽 위로는 돌 두 개가 발판처럼 걸쳐져 있습니다. 이 집의 변소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이곳을 '돗통시'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이 볼일을 보는 자리와 돼지가 사는 자리가 한 공간에 있었습니다.
돼지는 사람이 남긴 것을 먹고 자랐습니다. 부엌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도 이곳으로 왔습니다. 돼지우리에 깔린 짚은 돼지의 배설물과 섞여 거름이 되었고, 그 거름은 척박한 화산섬의 밭으로 돌아갔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는 순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이 검은 돼지는, 잔칫날과 제삿날 마을 전체의 식탁에 올랐습니다.
지구 반대편, 스페인 서부 엑스트레마두라 지방의 11월을 떠올려보겠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릉 위에 떡갈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풀밭입니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성글고, 초원이라고 하기에는 나무가 많은 풍경입니다. 바람이 불자 도토리가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 털의 돼지들이 코를 땅에 박고 그 도토리를 찾아다닙니다. 이 돼지들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이 들판을 거닐며 도토리를 먹고 살을 찌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은 몇 년에 걸쳐 소금과 바람 속에서 익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햄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두 섬과 반도, 두 마리의 검은 돼지. 하나는 사람의 곁에서, 하나는 떡갈나무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이 둘은 한 가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입니다. 최고의 재료는 어디서 오는가.
흔히 좋은 재료는 좋은 땅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마치 땅이 저절로 선물을 내어주는 것처럼요. 하지만 1부의 마지막 장에서 보려는 것은 그 반대입니다. 최고의 재료는 땅과 동물과 사람이 오랜 시간 맺어온 관계 속에서 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고기 한 점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부터 보겠습니다.
한 입 과학 — 먹은 것이 지방이 된다
소나 양 같은 되새김질 동물은 위가 여러 개이고, 첫 번째 위에 사는 미생물들이 먹이 속 지방을 먼저 바꿔놓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든 몸에 쌓이는 지방의 성질이 비교적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돼지는 사람처럼 위가 하나인 동물입니다. 먹이에 든 지방산이 크게 바뀌지 않고 그대로 흡수되어 몸의 지방으로 쌓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돼지가 무엇을 먹었는지가 고기의 지방에 비교적 정직하게 새겨지는 것입니다.
도토리에는 올리브유에 많은 올레산과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합니다. 도토리를 배불리 먹은 돼지의 지방은 올레산 비율이 높아지고, 그만큼 낮은 온도에서 부드럽게 녹습니다. 이베리아의 도토리 햄 지방이 실온에서도 윤기 있게 반짝이고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돼지는 자기가 사는 땅을 몸에 새기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돼지를 기르는 방식은 곧 그 땅을 고기로 번역하는 방식이 됩니다.
먼저 이베리아의 들판입니다.
스페인 서부와 포르투갈 남부에 펼쳐진 이 풍경을 스페인에서는 '데에사'라고 부릅니다. 데에사는 자연 그대로의 숲이 아닙니다. 사람이 수백 년에 걸쳐 만든 풍경입니다. 원래 빽빽했던 떡갈나무 숲에서 나무를 솎아내 햇빛이 들게 하고, 그 아래에 풀밭을 가꾸고, 가지를 쳐서 도토리가 더 많이 열리게 했습니다. 그 결과 나무 아래에서는 풀이, 나무 위에서는 도토리가 자라는 이중의 목초지가 생겨났습니다. 소와 양과 돼지가 계절을 나눠 이 땅을 썼습니다.
그리고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검은 돼지들이 이 들판으로 풀려납니다. 스페인에서는 이 방목기를 '몬타네라'라고 부릅니다. 돼지들은 이 기간 동안 하루에 많은 거리를 걸으며 도토리와 풀을 먹습니다. 넓은 들판을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는 돼지의 근육 사이로 지방이 가늘게 스며들고, 도토리의 올레산이 그 지방의 성질을 바꿔놓습니다.
이 햄의 맛은 그러니까 한 마리 돼지의 품종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솎아낸 숲, 가을의 도토리, 걷는 거리, 그리고 소금에 절여 몇 년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조각 안에 겹쳐 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이 햄의 등급을 매기는 방식도 이 생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스페인은 2014년부터 이베리코 햄에 색깔 띠를 붙여 등급을 구분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품종의 순도와 함께 돼지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느냐입니다. 가장 높은 등급인 검은 띠는 순수 이베리코 혈통의 돼지가 몬타네라 기간 동안 들판에서 도토리를 먹고 자랐다는 표시입니다. 같은 혈통이라도 사료를 먹고 자랐다면 다른 색의 띠를 받습니다. 최고의 등급을 결정하는 것이 태어난 핏줄만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이라는 점이, 이 제도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들판에서 돌아온 돼지의 다리는 또 한 번의 긴 시간을 지납니다. 소금에 묻어 수분을 빼낸 뒤, 서늘한 산간 건조장에 매달아 두 해, 길게는 네 해 넘게 익힙니다. 그동안 고기 속 단백질은 천천히 분해되어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으로 바뀝니다. 오래 숙성된 햄을 썰었을 때 단면에 보이는 작은 흰 점들은 곰팡이가 아니라, 이렇게 풀려나온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인 티로신이 결정으로 뭉친 것입니다. 돼지가 들판에서 보낸 몇 달과 건조장에서 보낸 몇 년이 한 조각 안에서 만납니다. 소금과 시간이 고기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2부의 숙성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제주의 돗통시입니다.
제주에서 돼지가 언제부터 길러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섬 사람들의 삶에 돼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깊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화산섬 제주는 물이 땅속으로 쉽게 빠져나가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논농사가 어려웠고, 밭의 힘을 유지하려면 거름이 절실했습니다. 돗통시는 그 절실함이 만든 장치였습니다. 사람의 배설물과 음식 찌꺼기를 돼지가 먹고, 돼지의 배설물과 짚이 거름이 되어 다시 밭으로 가는 구조입니다. 문화재청은 이 돗통을 배설물과 음식물 처리, 퇴비 생산이라는 생태순환의 원리가 담긴 제주 특유의 시설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돼지는 섬의 공동체를 묶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혼례와 상례 같은 큰일이 있으면 돼지를 잡았고, 여러 집이 돈을 모아 돼지를 잡아 나눠 먹는 '추렴'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삶은 돼지고기를 나무 도마째 썰어 내는 돔베고기, 돼지 피와 내장으로 만든 순대가 모두 이 풍습 위에서 자랐습니다. 제주에서 돼지 한 마리는 한 집의 재산이 아니라 마을의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검은 돼지는 한때 사라질 뻔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며 몸집이 크고 빨리 자라는 외래 품종이 들어왔고, 재래 흑돼지는 이들과 교잡되면서 순수한 혈통이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돗통시도 위생 문제로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1986년, 제주도 축산진흥원은 섬 곳곳과 부속 섬들을 뒤진 끝에 우도 등 외딴 섬에서 순수 재래종으로 보이는 돼지 다섯 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네 마리였습니다. 이 다섯 마리에서 시작된 혈통이 30년 가까이 이어졌고, 2015년 3월 축산진흥원이 관리하던 260여 마리의 제주흑돼지가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 돼지들은 육지의 재래 돼지와 구별되는 고유한 혈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제주의 식당에서 만나는 흑돼지는 대부분 이 재래종의 피에 다른 품종을 더해 기른 돼지입니다. 돗통시도, 사람의 찌꺼기를 먹던 시절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과 검은 털 안에는 척박한 섬에서 버릴 것 없이 살아가던 방식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재래종을 지키는 일과 맛을 지키는 일은 같은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의 난지축산연구소는 제주 재래 흑돼지의 육질 특성은 살리면서, 느리게 자라고 살이 적게 붙는 단점을 보완한 새 품종을 개발해 '난축맛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근육 사이 지방이 일반 돼지보다 훨씬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사라질 뻔한 다섯 마리의 혈통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한편, 그 피를 이어받은 돼지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는 두 갈래의 길이 함께 열린 것입니다. 지키는 것과 먹는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간다는 점에서, 이것은 돗통시의 순환이 모양을 바꿔 이어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두 돼지를 나란히 놓아보겠습니다.
이베리아의 돼지는 넓음의 산물이었습니다. 드넓은 떡갈나무 들판, 돼지 한 마리가 누리는 넉넉한 공간, 그리고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을 기다리는 여유. 이 돼지의 맛은 땅이 가진 풍요를 천천히 고기로 옮기는 데서 나왔습니다.
제주의 돼지는 좁음의 산물이었습니다. 돌담 안의 작은 우리, 물 빠지는 척박한 땅, 한 톨의 거름도 아까운 섬. 이 돼지의 가치는 부족함 속에서 모든 것을 순환시키는 데서 나왔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풍요를 다루는 기술이었고, 하나는 결핍을 다루는 기술이었습니다. 둘 다 자기 땅의 조건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1부 전체를 관통해 온 질문이 방향을 바꿉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땅이 던진 질문을 따라왔습니다. 더위와 추위, 강과 사막, 곡물과 기름. 그런데 이 마지막 장의 두 돼지는 조금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땅이 질문을 던진 것은 맞지만, 답을 만든 것은 결국 사람의 손이었다는 것입니다. 떡갈나무를 솎아낸 손, 돌담을 쌓은 손, 사라져 가는 다섯 마리 돼지를 찾아낸 손. 최고의 재료는 땅에서 저절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땅과 맺은 관계 속에서 길러집니다.
다음 2부는 바로 그 손의 이야기입니다. 불을 다루고, 칼을 쥐고, 소금을 뿌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협상한 손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1960년대 제주의 돌담 안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침 볕이 돌담 위로 넘어오고, 검은 돼지는 짚더미 속에서 몸을 뒤척입니다. 이 집 사람들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돗통시가 몇십 년 뒤 모두 사라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섬의 돼지가 한때 다섯 마리까지 줄어들었다가, 나라가 지정한 천연기념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같은 계절, 엑스트레마두라의 들판에서는 도토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들판의 떡갈나무 가운데 어떤 것은 수백 년 전 누군가가 솎아내고 남겨둔 나무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남긴 나무 아래에서 수많은 세대의 돼지가 살을 찌우리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두 풍경에 공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돼지가 아니라 사람의 선택입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순환시키고,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땅은 재료를 허락했고, 사람은 재료를 길렀고, 시간은 그 관계를 맛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