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시간의 알찬 소비  ·  당신 주변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프롤로그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놓인 5천 년

금요일 저녁 여덟 시, 서울의 어느 아파트 거실입니다.

현관 벨이 울리고, 배달 기사가 종이 상자 두 개를 건넵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거실 가득 기름과 마늘과 달큰한 양념 냄새가 퍼집니다. 한 상자에는 황금빛 프라이드치킨이, 다른 상자에는 붉은 양념치킨이 담겨 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자 김치통이 보이고, 그 옆에 차갑게 식혀 둔 맥주 캔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누군가 김치를 한 접시 덜어 오고, 누군가 맥주 캔을 땁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야구 중계가 흘러나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저녁입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거실에서 오늘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식탁을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치킨의 튀김옷을 이루는 밀은 약 1만 년 전 지금의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의 언덕에서 처음 길들여졌습니다. 닭을 튀긴 기름은 공장에서 짜낸 식물성 기름이고, 그 공장의 역사는 한 세기 남짓입니다. 양념치킨의 붉은색은 16세기에 대서양을 건너온 아메리카의 고추에서 왔고, 그 단맛은 전쟁 뒤에 흔해진 설탕과 물엿에서 왔습니다. 김치통 속에서는 수십억의 보이지 않는 요리사들이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그 김치의 붉은색도 고추에서 왔고, 배추는 한 세기 전에야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맥주 캔을 차갑게 만든 냉장고는 1806년 보스턴 부두에서 녹아내린 얼음의 후손이고, 맥주 자체는 수천 년 전 나일강가의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던 음료의 먼 친척입니다.

한 접시의 치킨과 한 그릇의 김치와 한 캔의 맥주. 이 평범한 식탁 위에는 5천 년이 넘는 시간과, 다섯 대륙의 땅과,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손이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시간과 땅과 손을 따라가는 책입니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있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음식의 차이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다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땅의 음식은 맵고 강렬하고, 어떤 땅의 음식은 시큼하고 묵직합니다. 어떤 부엌은 불을 순간적으로 스치고, 어떤 부엌은 불 위에서 오래 기다립니다. 어떤 식탁은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펼치고, 어떤 식탁은 한 접시씩 차례로 내놓습니다. 이 차이들은 취향이나 수준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서 있던 땅이 던진 질문이 달랐고, 그 질문에 그들이 내놓은 대답이 달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섯 개의 동사를 따라 움직입니다.

1부에서는 땅이 묻습니다. 더위와 추위, 강과 사막, 곡물과 지방이 인류에게 어떤 생존의 질문을 던졌는지를 봅니다.

2부에서는 손이 답합니다. 불과 칼과 소금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로, 사람들이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만들어냈는지를 봅니다.

3부에서는 길이 섞습니다. 기마 유목민과 제국과 향신료 상인과 이민자를 따라, 그 대답들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뒤섞였는지를 봅니다.

4부에서는 식탁이 나눕니다. 코스와 한 상, 왕과 미식가, 전쟁과 공장이 음식을 둘러싼 질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봅니다.

5부에서는 혀가 기억합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 우리가 무엇을 맛있다고 느끼는지 안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봅니다.

각 장은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돌아와 끝납니다. 그 사이에 과학과 역사와 조금의 생각이 놓여 있습니다. 부엌의 과학이 궁금한 독자를 위해 각 장에 '한 입 과학'이라는 짧은 상자를 두었습니다. 건너뛰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불편한 역사를 피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가 즐기는 많은 맛은 정복과 약탈, 노예제와 전쟁, 굶주림의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맛을 부정하는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숟가락의 맛이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 때, 우리는 그 음식을 조금 더 깊이 먹을 수 있습니다.


다시 금요일 저녁의 거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치킨 상자는 벌써 절반쯤 비었습니다. 누군가 양념 묻은 손가락을 핥고, 누군가 김치 한 조각을 집어 치킨과 함께 먹습니다. 텔레비전 속 타자가 공을 쳐 올리고, 거실에 환호성이 터집니다. 이 식탁에 앉은 누구도 지금 5천 년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덮을 무렵에는, 이 식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장을 넘긴 뒤 다시 이 거실로 돌아올 것입니다.